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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현지조사에 대응하는 우리의 매뉴얼

coverstory 현지조사에 대응하는 우리의 매뉴얼

  • 최승원·고신정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0.07.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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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당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

Cover Story

후텁지근한 한낮의 더위가 잠시 숨을 돌린 8월말 아침 출근길. K의원으로 접어드는 진입로에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K원장은 가을 기운이 제법 묻어나는 바람을 가만히 맞고 있자니 왠지 오늘 하루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며 간호사들에게 활기찬 아침인사를 날렸다. 대기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3명의 남자 손님들이 앉아 K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손님이 3명이나 기다리고 있으니 운수좋은 날이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남자가 신분증을 코끝으로 들이댄다. "K원장님이시죠. 현지조사나왔습니다."

K원장과 조사원으로 나온 A씨의 악연은 이날 이후 3년을 끈 소송으로 이어졌으며 15일 대법원은 현지조사 거부로 고소당한 K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보건복지부는 한해 대략 800곳의 병의원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한다. 의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은 전국에 8만여곳. 의료기관 100곳 중 1곳은 매해 현지조사를 받는 셈이다. 매년 적지 않은 수의 의료기관들이 현지조사를 받고 있지만 이번 K원장의 재판에서 드러났듯이 현지조사 관행에는 몇가지 문제들이 있다.

재판과정에서 불거진 현지조사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어느날 갑자기 닥칠 수 있는 현지조사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봤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사전정보'와 '준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현지조사원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순간 영업정지와 면허정지, 형사고발이란 낱말이 떠오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기 쉽다. 이순간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침착함'.

불안함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누군들 침착하고 싶지 않겠느냐는 태클이 들어 올 만 하다. 백번 맞는 얘기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현지조사 대응매뉴얼이다. 지리산에서 10년 도닦고 하산해 침착해야지하고 마음먹으면 침착해지는 마인드컨트롤의 달인이 아닌 이상, 범인들이 이 순간 침착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전정보'와 '준비'에 있다.

현지조사가 무엇인지? 또 현지조사를 맞닥뜨렸을때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정보와 준비가 갖춰진다면 당신은 이 순간 침착할 수 있다.

우선 현지조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현지조사는 행정부가 내리는 처분. 즉 '행정처분'에 속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수사관들이 수색영장들고 쳐들어와 사무실에 있는 공문 한장까지 탈탈 털어가는 압수수색과 비슷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많지만 압수수색과 현지조사는 다르다.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영장제도를 근간으로 이뤄진다. 압수수색의 경우 피조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영장제도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영장이 발부됐더라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피조사자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형사소송법으로 조사 절차를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럼 행정처분인 현지조사는 어떤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부당 개연성이 높다고 의심되는 기관을 현지조사하기로 마음먹고 장관 명의의 조사명령서만 작성하면 끝이다.

조사과정은 또 어떤가? 복지부는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을 만들어 현지조사에 나서고 있지만 현지조사 지침은 내부 규정일 뿐이며 압수수색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피조사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규정은 없다. 현지조사가 끝난 후 권리구제 제도를 안내하는 한장으로 된 브로셔가 있을 뿐이다.

현지조사에 나서는 조사원들에게 피조사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자료가 있느냐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물어봤지만 그런 자료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압수수색에 비해 현지조사는 왜 이같이 널럴한 제한규정만을 두고 있는 걸까? 박형욱 변호사(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변호사·연세의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행정처분은 압수수색에 비해 피조사자의 법익침해 정도가 현격히 적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압수수색에 비해 널럴한 제한규정만을 두고 있는 현지조사는 압수수색만큼 강제력이 강할 수 없다는 것을 반영한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현지조사와 압수수색의 차이는 느끼기 힘들다.

그럼 법리상 법익침해 정도가 적은 현지조사를 왜 압수수색받듯 받아야 하는 걸까? 그건 건강보험법 제95조의 고약한 규정때문이다.

국세기본법·여신금융업법 피조사자 보호규정 좀 보고배워!

건보법 제95조는 "서류제출을 하지 아니한 자, 허위로 보고하거나 허위의 서류를 제출한 자 및 검사 또는 질문을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신금융업법이 서류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리도록 한 규정에 비해 강제력이 큰 규정이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건보법은 '벌금'을, 여신금융업법은 '과태료'를 벌칙조항으로 하고 있는 것이 큰 차이다. 벌금은 형법상의 벌칙이고 과태료는 행정처분이다.

쉽게 말해 벌금을 받으면 호적에 빨간줄 가는 거고 과태료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현지조사는 행정처분일 분인데 현지조사를 거부하면 형법상의 처벌을 받게 돼 있는 거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는 "입법과정에서 서류미제출로 인해 발생할 공익의 침해 정도를 여신금융업법보다 크게 고려한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의사의 입장에서는 건보법 제95조가 바뀌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개정이 어렵다면 상대적으로 법익침해 정도가 큰 만큼 현지조사와 관련된 제한규정을 넣거나 피조사자 보호규정 등을 넣도록 하는 요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세무조사의 근거가 되는 국세기본법 제63조15을 보면 '납세자보호관'을 둬 부당한 세무조사나 절차에 대한 이이 또는 중지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무조사를 받는 피조사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전담제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거다.

여신금융업법의 경우도 제50조를 통해 서류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을 하나하나 규정해 놓고 있다.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서류제출 요구를 남발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건보법에서는 모두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이다.

건보법에는 하다못해 조사명령서나 서류제출명령서에 담겨야할 항목조차도 제시돼 있지 않다. 그저 행정처분기본법 조항을 애둘러 참작할 뿐이다.

복지부나 심평원은 나름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내부 지침일 뿐이며 피조사자 보호규정이라할 조항도 없다. 박형욱 변호사는 "건보법 현지조사 규정이 상당히 포괄적이라 피조사자의 법익 침해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심평원 직원의 현지조사 참여 적법성도 꼼꼼히 집고 넘어가야 할 규정이다. 의료급여법시행령 제18조는 "의료급여기관에 대한 검사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심평원이 업무를 '지원'하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심평원 직원들이 현지조사에 직접나서는 것을 지원이란 제한된 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거다.

지적된 문제들의 개정은 의료계에서 꾸준히 주장해야 할 몫이고 회원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행정처분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됐다면 이번에는 현지조사를 받게 될 경우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한 대응매뉴얼을 본지가 제시해 본다.

스텝 1 우선 현지조사원이라고 밝힌 직원의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확인한다.  조사원이 1명 이상이면 나머지 조사원들의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조사원의 소속이 '복지부'인지 '심평원'인지 반드시 확인하라. 이름과 직함 등을 적어 놓는다.

스텝 2 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은 현지조사를 복지부 공무원이 주체가 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평원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며 현지조사를 '지원'하는 정도의 지위만을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만일 조사원들 중 복지부 공무원이 한명도 없다면 이번 조사를 책임지는 복지부 공무원의 이름을 묻고 복지부에 확인전화를 걸도록 하자.

스텝 3 조사원이 보여 줄 '조사명령서'와 '요양(급여) 관계 서류 제출명령서'를 꼼꼼히 검토하자. 최근 현지조사를 거부해 형사고소를 당했던 K원장이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서류제출명령서에 복지부 장관의 직인이 아닌, 심평원 직원의 직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령서에 복지부 장관의 직인이 찍혔는지 확인하자. 다른 사람의 직인이 찍혀있거나 직인이 없는 어떠한 명령서에도 응할 의무가 없다.

스텝 4 조사명령서와 서류제출명령서에 조사목적과 조사기간과 장소, 조사원의 성명과 직위, 조사범위와 내용, 제출자료, 조사거부에 대한 제재(근거 법령 및 조항 포함)들의 항목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는지 확인하자. 때때로 조사기간이 공란이거나 시작일만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항목이 미비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면 조사원에게 그 이유를 묻고 위의 항목을 충족시켜달라고 요구하자. 물론 명령서에 변동사안이 있다면 명령서를 다시 작성해 복지부 장관의 직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

스텝 5 조사원의 양해를 얻어 조사명령서와 서류제출명령서를 복사할 수 있으면 복사를 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텝 6 현지조사는 형법의 압수수색과는 다른 행정처분이다. 조사원의 조사에 성실히 응해야하지만 마음이 불안하거나 안정이 안될 경우 조사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력자를 불러 오거나 조력자가 오는 동안 혹은 생각을 정돈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특히 진료 중에 현지조사를 받게 될 경우는 진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의협 현지조사 문의 ☎02-794-2474(내선520)>. 물론 이런 시간들을 이용해 증거인멸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스텝 7 행정조사기본법(제13조)는 "자료 등을 영치하는 경우 조사대상자의 생활이나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우려가 있는 때에는 조사원은 자료 등을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사본을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치에 갈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접수 및 수납대장 등 당장 진료에 필요한 자료들은 원본이 아니라 사본으로 제출하겠다고 요청할 수 있다.

사족. 부당한 요구나 위압적인 조사원의 태도에는 당당히 대응해야 하지만 조사원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 차분하고 현명하게 대응하자.

*도움말 박형욱 변호사(연세의대 교수),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

 

"행정처분인 현지조사를 마치 압수수색하듯 위압적으로 하는 조사원들에게 우리들은 당당히 밝히는 바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장 닥달해서 자행되는 초법적인 현지조사 관행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의사들이여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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